[유지수의 경세제민]미·중 갈등 유탄 맞은 韓, 지금이 정쟁할 때인가

  • 등록 2022-09-08 오전 6:15:00

    수정 2022-09-08 오전 6:15:00

[유지수 국민대 전 총장·명예교수] 반도체와 배터리 때문에 대한민국은 고민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 손에는 반도체를, 다른 손에는 배터리를 들고 서로 펀치를 날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행여라도 헤비급 나라들의 무거운 펀치를 맞을까 걱정돼 이리저리 피하기에 급급하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최근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덩샤오핑은 1979년 중국 시장을 개방했으며, 글로벌 기업들은 앞다퉈 중국에 투자를 했다. 덕분에 중국경제는 시장 개방 이후 급성장했다. 우리나라도 중국경제 성장기에 대중국 수출 등으로 덕을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경제가 성장할수록 중국정부는 서서히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투자유치 초기에만 해도 기업친화적인 정책을 폈다. 그러나 자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게 되자 노골적으로 외국투자기업에 대한 배타적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중국 자동차기업들의 생산원가를 분석해 보면 배타적 정책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중국 자동차기업들은 재료비·인건비·간접비를 아무리 절감해도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가격의 제품·부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공급사슬 전반에 걸쳐 은밀하게 보조금을 주지 않는 한 만들 수 없는 가격의 제품들이다. 덩샤오핑은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말했지만, 이런 중국정부의 행태를 빗대 최근에는 “단, 고양이는 중국 고양이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에서만 불공정한 술수를 쓰는 게 아니다. 수년 전 호주에서는 중국이 호주 부동산개발과 관련해 차세대리더로 꼽히던 호주 정치인을 매수한 스캔들이 터졌다. 당연히 호주에서는 반중국 정서가 거세졌다. 중국은 또한 어류자원 확보를 위해 남미·아프리카에도 손을 뻗어 조업권을 획득했는데 중국어선들이 조업권 관련 계약을 지키지 않고 어류자원을 남획해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의 자원확보는 중국이 세계를 호령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일대일로 사업의 대상이 되는 국가에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하며 이들 나라를 장악해 가고 있다.

중국이 기술 절도 의심을 받은 지도 오래됐다. 기업이나 정보기관 차원에서 산업스파이가 있다는 것은 예전에도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중국처럼 국가 차원에서 전 산업 분야에 걸쳐 조직적으로 스파이 행위를 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수년 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기술을 훔친 혐의로 미국이 휴스턴에 있는 중국영사관 폐쇄 명령을 내리자 영사관 마당에서 문서를 태우는 장면이 미국 TV에 방영된 적이 있다. 미국 국민은 영사관 안마당에서 문서를 태워 증거를 없애는 중국의 음흉함에 분노했다. 상황이 이러니 중국의 기만과 음흉한 술수에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미국에서 팽배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칩4’와 ‘전기차 자국 생산’이라는 정책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전기차는 자국에서 조립한 것에 대해 최대 7500달러(한화 약 10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 내년부터는 배터리에 사용되는 주요 광물인 리튬·니켈도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한 것이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법안의 최대 수혜자는 테슬라이며 GM과 포드도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수년 전부터 미국 자동차 업계는 미국정부와 의회에 중국 전기차의 위협을 알렸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특히 중국에 진출했던 GM은 중국의 외국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정책을 워싱턴 정계에 토로했을 것이다.

결국 이런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가장 손해를 본 것은 현대·기아차이다. 현대·기아의 전기차는 미국 시장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게 됐다. 보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면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보다 7500달러나 비싸게 되고 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질 것이다.

2011년 한미FTA를 체결 이후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1위 품목은 자동차이며 작년에는 223조 원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했다. 자동차는 무역흑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효자상품이고 무엇보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그 어떤 산업보다 부품업체가 많기 때문이다.

인구 5000만 명을 넘는 선진국은 예외 없이 경제의 중심에 자동차산업이 있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이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으로 타격을 입게 됐다. 현재 현대·기아의 전기차는 미국 소비자 선호도에서 경쟁사들을 앞서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침투율이 6% 미만으로 이제 막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시기이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자칫 미국 전기차 시장을 선점할 황금 같은 기회를 잃을 수 있다. 우리 정부도 미국정부에 항의하고 나섰지만 성과는 미지수이다.

전기치 배터리 소재 기술을 개발하는 일도 급선무이다. 중국이 배터리를 무기화할 경우 우리나라 전기차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어서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주요 광물인 리튬·니켈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고가인 코발트는 사용을 줄이거나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코발트 사용량을 줄이는 연구개발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지만, 산·학·연 협동 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특히 소재개발과 같은 기초과학 응용 연구는 시간과 노력의 축적돼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정권이나 정당과 상관없이 범국가적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미국·유럽·호주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중 정서의 근본 원인은 중국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이 청나라 황제시대로 돌아가 세계를 호령하겠다는 생각이 갈등의 원천이다. 우리 정치권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제발 국익을 위한 현안으로 논쟁했으면 한다. 유교문화가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는 제사상에 올릴 그릇 위치를 놓고도 당파싸움을 했다. 지금의 정치 이슈를 보면 잡담 수준의 사소한 문제들 뿐이다. 조선시대 당파싸움으로 회귀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양 대국 간의 싸움에서 우리 등만 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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