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아이스하키 영원한 골키퍼 정몽원 HL회장[오너의 취향]

1994년 아이스하키팀 창단 이후 뒷배 역할한 구단주
대학시절부터 경기 직관하는 열성팬으로서 '덕업일치'
IMF 위기로 한라그룹 와해중에도 건사한 아이스하키팀
평창올림픽 대표팀 출전 결실…한인 최초 IIHF 헌액
  • 등록 2022-10-26 오전 6:30:00

    수정 2022-10-26 오전 6:30:0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6년 7월 방영한 문화방송 드라마 ‘아이싱’은 모험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드라마 소재로 등장한 아이스하키가 시청률을 끌어올지, 방송가는 반신반의했다. 당시 변변찮았던 국내 아이스하키 저변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아랑곳하지 않은 문화방송은 당대 청춘스타 장동건, 유태웅, 이종원, 이승연을 캐스팅하고 총력을 쏟았다. 1994년 종영한 스포츠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재림을 기대하면서였다.

정몽원(오른쪽)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이 2017년 4월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팰리스 오브 스포츠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남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 대회 최종 5차전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승리하자 백지선 감독을 뜨겁게 껴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누구보다 드라마 ‘아이싱’의 성공을 바란 이는, 아마도 정몽원 HL그룹 회장이었을 테다. 마지막 승부로 농구 붐이 일었던 것처럼 아이싱으로 아이스하키 열풍이 일기를 바랐을 것이다. 30년 가까이 아이스하키 발전에 천착해온 그의 인생사를 보면 심정을 읽을 수 있다.

한라그룹(올해 8월 HL그룹으로 사명 변경)은 1994년 12월 계열사 만도기계에 달린 위니아 아이스하키팀(만도 위니아)을 창단한다. 실업팀으로서는 쌍방울그룹 계열 석탑건설에 이은 국내 두 번째였다. 고려대를 졸업한 정 회장은 학창 시절부터 아이스하키 경기를 즐겨온 열성 팬이었다. 그해 8월 창단 선언에서 정 회장(당시는 부회장)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역할 일환으로 동계스포츠 균형발전을 위해 창단을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단주 정몽원의 전폭적인 지지는 성적으로 말했다. 만도 위니아는 창단 원년 출전한 1995년 KBS배 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95~1996, 1996~1997 한국아이스하키리그전에서 정규리그 1위에 만도 위니아가 이름을 올렸다. 한라그룹은 목동 아이스하키 경기장 주변에 선수단 기숙사를 마련하고 훈련에 전념하도록 지원했다. 만도 위니아가 정규 리그에 이어 챔피언결정전까지 1위를 차지한 건 1997~1998년 리그였다. 구단은 잔치 분위기였지만 구단주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구단주 정몽원이 얼마나 아이스하키에 진심인지는 여기서 드러난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한라그룹은 만도기계를 포함한 주요 계열사를 매각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라그룹은 대기업집단에서도 해제될 만큼 사세가 위축했다. 팀을 상징하는 위니아의 에어컨 사업부가 팔린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럼에도 만도 위니아는 해체하지 않았다. 팀 명이 만도 위니아에서 한라 위니아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원조 아이스하키실업팀 석탑건설을 비롯한 여타 실업팀이 차례로 해체한 것과 대조된다.

이후로 한라 위니아를 한국에서 꺾을 팀은 없었다. 모든 실업팀이 해체한 터에 별수가 없었다. 구단주 정몽원은 2004년 팀을 경기 안양 연고의 안양 한라로 바꾸고 아시아리그에 참가를 결정한다. 우리처럼 고사 위기에 처한 일본 아이스하키팀과 연대해 새 리그를 꾸리기로 한 것이다. 당시 결정이 아니었다면 어렵게 닦은 아이스하키 저변도 먼지가 됐을지 모른다. 안양 한라는 2004~2005년부터 코로나19로 시즌이 중단된 2019~2020년 시즌까지 6차례 리그에서 우승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러는 새 한라그룹은 되팔았던 만도 등 주력 계열사를 되사들이면서 그룹 재건에 성공한다.

정몽원(왼쪽) 한라그룹 회장이 지난 5월 핀란드 탐페레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2020년 명예의 전당 입회식에 참석해 뤼크 타르디프 IIHF 회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행사가 미뤄져 2년 만에 열렸다.(사진=한라그룹)
그의 공을 논하는 데에 평창올림픽은 빠지지 않는다. 아이스하키 남녀 대표팀이 2018년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2013~2021년)으로서 정 회장 역할이 컸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2020년 명예의 전당에 한국 아이스하키인으로는 처음으로 구단주 정몽원을 헌액한 것을 보면 그간의 발자취에 대한 평가를 가늠할 수 있다.

여전히 아이스하키는 국내에서 비주류 스포츠다. 일류를 지향하는 기업인이 비주류를 지원하는 이유는 뭘까. 아이스하키팀 운영 비용이면 인기 있는 농구나 배구 구단을 운영할 수도 있다.

“아이스하키는 동계 종목 중 유일한 팀 스포츠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잘해야 한다는 게 기업(경영)과 굉장히 비슷하다.” (매일경제 인터뷰)

만도 위니아의 후신 HL 안양은 올해 2년 만에 개막한 아시아리그에서 1위(25일 현재)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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