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뱃고동에 울산이 ‘들썩’…대호황 돌아온 HD현대重

수주 호황에 9개 도크 쉴새 없이 풀가동
中 추격 따돌릴 고부가 LNG선 건조 한창
총파업 직전 임금협상 합의안 극적 도출
'노사 상생' 조선업 인력 부족 위기 넘어
  • 등록 2023-09-10 오후 4:07:20

    수정 2023-09-10 오후 7:28:43

[울산=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울산 동구 사람들에게 조선소에서 울리는 뱃고동은 듣기 싫은 소음이 아닙니다. 내 가족이 만든 배가 또 한 척 바다로 나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지요. 수년간 뚝 끊겼던 소리가 요즘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리니 이처럼 기쁜 게 없습니다.”

건조를 마친 배에 이름을 붙이는 명명식은 조선소 부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사다. 선주와 가족들이 선장실에 올라 뱃고동을 울리면 배는 비로소 안벽에 묶여 있던 탯줄을 끊고 바다로 나갈 준비를 마치게 된다. 지난 6일 울산공항에 내려 HD현대중공업 조선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조선업 제2의 부흥기를 맞은 울산의 풍경은 현지 주민의 이야기를 통해 이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지난 6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사진=HD현대중공업)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호를 딴 ‘아산로’에 진입하자 현대미포조선의 골리앗 크레인이 위용을 드러냈다. 염포산 터널을 빠져나와 HD현대중공업 조선소 야드로 들어선 순간 여의도 면적 3배에 달하는 192만평(635만㎡) 넓이의 광활한 조선소 부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 조선소는 전날까지만 해도 파업으로 작업장이 멈출 위기에 처했었다. 노조가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키며 무기한 전면 총파업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에 노사는 긴급히 2차 잠정합의안을 도출했고 7일 찬반투표에서 극적 가결해 생산 차질을 피할 수 있게 됐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도 지연이라는 아찔한 상황이 펼쳐질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합의는 최근 추투(秋鬪)가 본격화하는 산업계에 노사 상생 사례로 귀감이 됐다는 평가다.

이날 찾은 조선소는 9개의 도크(건조공간)가 배와 자재로 꽉 차 있어 넓은 부지가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맑은 하늘이 변덕스럽게 소나기를 뿌려대는 와중에도 3만2000여명(본사 1만3000명·협력사 1만9000명)의 직원들은 후덥지근한 날씨 속 도크 곳곳에서 용접 불꽃과 함께 땀을 뚝뚝 쏟아내며 건조 작업에 한창이었다.

조선소 직원들은 배 만드는 작업을 레고 조립 과정에 비유한다. 두꺼운 철판으로 블록을 만들고 이를 트랜스포터 차량을 이용해 도크로 옮겨 조립하면 배가 완성된다. 최대 1200톤(t)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트랜스포터는 이날 블록을 싣고 조선소 안을 쉴 새 없이 오갔다.

주황색의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에는 배의 바닥 부분이 될 거대한 블록이 매달려 있었다. 이 크레인은 아파트 36층 높이인 109m로 한 번에 들 수 있는 중량이 최대 1290t에 달한다. 조선소에 있는 총 8개의 골리앗 크레인은 각기 다른 크기의 블록을 매단 채 다음 작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크레인이 이 정도 크기의 블록을 들어 올리는 건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라고 했다.

지난 6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액화석유가스(LPG)운반선이 건조되는 모습.(사진=HD현대중공업)
수주 대호황을 맞아 조선소에서는 20여척의 선박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었다. 규모가 가장 큰 길이 672m, 폭 92m, 높이 13.4m의 3도크에서는 무려 배 4척을 동시에 건조 중이었다. 도크는 바닷물을 빼고 그 공간에서 선박을 제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도크에 다시 물을 들여오면 완성된 선박을 바다에 띄울 수 있게 된다. 3도크의 경우 물을 채우는 데만 6시간, 다시 빼는 데 1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선박 건조 마무리 단계가 진행되는 안벽에 들어서자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선 크기에 압도됐다. 이날 안벽에서는 조만간 선주사에 인도될 21만6000입방미터(㎥)급 LNG선 2척의 마무리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안벽에서는 전기·통신 장비 설치와 선실 내부 공간 배치 등이 이뤄진다. 이날 본 LNG선은 길이가 약 300m에 달했다. 여의도 63빌딩 높이는 264m. 말 그대로 빌딩 하나를 바닥에 눕혀 놓은 셈이다.

이 선박은 우리나라 전체에서 하루 동안 사용하는 LNG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규모다. 무엇보다 천연가스를 액체로 보관·운송하려면 화물창을 영하 163도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중국과의 수주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여유로운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LNG선 기술력을 최고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 국내 최초로 LNG선을 만든 현대중공업은 현재까지도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이날 도크에서 고부가가치인 LNG선 여러 척이 동시에 건조되는 모습을 보면서 수년간 적자의 늪에 빠져 있던 HD현대중공업의 실적 개선이 눈앞으로 다가왔음이 체감됐다. HD한국조선해양이 지난달 수주한 LNG선 선가는 척당 2억6500만달러(약 3500억원)로 17만4000㎥급 LNG운반선 기준 최고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에만 선박 122척(해양설비 1기 포함)을 수주하는 성과를 냈다. 수주 금액은 159억4000만달러(약 21조3000억원)로 연간 목표인 157억4000만달러(약 21조원)의 101.3%에 달한다. HD현대중공업은 상선 기준 지난해 38척에 이어 올해 총 44척을 건조해 인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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