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많은 백신]"도매상 선정으로 끝…백신 배송 과정 사각지대 방치"③

보건정책 전문가 이석구 충남대 교수 인터뷰
권고안 가이드라인 준수 민간에 맡기고 모니터링 없어
가격 위주 입찰 과정에 콜드 체인 준수 역량 반영해야
장기적으로 '온도감지 표시라벨' 부착 검토해야
배송 체계 점검 위한 위원회(전문가+업계+정부)필요
  • 등록 2020-10-18 오후 5:33:06

    수정 2020-10-18 오후 9:23:27

이석구 충남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과) (사진=노희준 기자)
[대전=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백신 물류(보관-운송-배달-취급) 관리에 정부가 별로 개입하지 않습니다. 백신을 전국에 배송할 도매상 업체 선정만 하고 그들이 알아서 콜드체인(정온배송)을 준수하라고 맡겨둡니다. 사실상 배송 과정에 모니터링도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상온 노출이라는 문제가 터진 것입니다.”

보건정책 전문가 이석구 충남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과)는 15일 충남대 의대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국가예방접종사업(NIP)용 독감 백신은 국가가 총량 구매를 하고 도매상을 통해 배분하는데 이때 계약업체 수송이 적정하게 이뤄지는지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백신 배송 과정이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얘기다.

현재 접종 대상과 백신 접종 수량 등 국가예방접종 사업 전반은 질병관리청이, 독감 백신 품질 검증은 식품의약품안전처, 도매업체 선정은 조달청, 도매업체에 대한 허가 및 관리감독은 지방자치단체가 맡는다. 형식적으로 보면 지자체가 도매상을 관할하지만 실제로 콜드체인 준수 등에 대한 감시 기능은 작동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단적으로 이번 독감 백신 배송 과정의 상온 노출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제보를 통해 드러났다.

정부가 백신 배송의 콜드체인과 관련해 개입한 지점은 권고사항일 뿐인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을 지난 7월 발표한 게 사실상 유일하다. 하지만 내용에 빈틈이 많은 데다 그마저도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다. 이 교수는 “백신 적재를 위한 시설기준이나 백신 배송자에 대한 교육훈련, 배송차량기준 등 배송업체 준수 사항을 좀더 촘촘하게 제시해야 한다”며 “콜드체인 준수를 위한 도매업체의 시설 투자 및 인력 수준을 백신 조달 업체 평가 과정에 질적 평가 요소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달청의 NIP용 독감 백신 조달업체 선정은 가격 위주로 이뤄진다. 조달청은 먼저 기준가격 이상의 최저가 입찰가를 제시한 업체를 1순위로 선정한다. 이후 적격심사평가(경영상태+입찰가격+신인도)와 5개 이상의 제조사에서 발행한 공급확약서 확보 여부를 확인해 낙찰자를 최종 선정한다. 만약 최저가 1순위자가 적격심사와 확약서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차순위 최저 입찰자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정부의 콜트체인 가이드라인 준수 역량은 애초 평가요소가 아니다.

이 교수는 “백신 보관과 유통에 대한 연속적인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백신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색하는 ‘온도감지 표시라벨’을 백신에 붙이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며 “하지만 중간 배송 시스템에 대한 체계적인 개선 없이 온도감지 표시라벨만 부착하면 당장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많은 양의 백신을 폐기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온도감지 표시라벨(VVM. Vaccine Vial Monitor)은 유통 과정에서 백신 변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장치다. 맥주병에 붙어있는 온도표시 종이가 온도 변화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것처럼 백신이 적정온도를 넘어서면 변색하도록 만든 장치다. 백신 업계에 따르면, 이는 국내보다 콜드체인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은 저개발국가에 나가는 수출용 백신에 주로 부착하는 장치다. 국내 백신 물류 시스템이 저개발 국가 수준과 다르지 않다는 이 교수의 뼈아픈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일단 전문가와 업계,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부실한 백신 배송 체계 전반을 진단하고 향후 여러 부처로 쪼개진 백신 관리감독의 사각지대도 메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자문위원회가 질병청, 식약처, 조달청, 지자체 등 백신과 관련한 다양한 정부 조직 사이의 간극을 줄여줄 수 있다”며 “백신 운송 과정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에도 나서 제조사와 유통사의 현실적인 문제도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신 관련 정부 조직이 분산된 것은 전문화를 위해 불가피하다”며 “백신 생산, 도입, 안전성 검토, 공장 보관은 식약처에서 담당하고 백신 구입 결정과 도매상에서 보건소와 의료기관까지의 배송은 질병청에서 책임지는 게 낫다”고 했다. 다만 의료기관의 백신 보관 상태나 백신 관리 담당자의 교육 훈련, 주기적 모니터링 등 콜드체인 점검은 시도와 시군구 보건소에 위임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또 “과거보다 정부의 무료 접종이 확대돼 질병청에 백신수급과가 생겼듯 조달청에도 백신 조달 관련 전문조직이나 인력이 배치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조직은 단순히 백신 배송을 담당할 도매업체 선정에 그치는 게 아니라 비 입찰 시즌에는 다른 국가의 백신 조달시스템을 연구하고 백신 적정가의 원가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백신 업계에서 요구하는 정부 제시 입찰가 상향에 대해서도 콜드체인 규정 강화와 준수를 전제로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시장가 70%까지 상향해보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며 “가이드라인을 촘촘하게 만들고 정부가 지키도록 해 물류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업체의 입찰 참여를 막야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 정부가 독감 백신 입찰에서 제시한 가격은 1도즈(1회 접종분)당 8620원으로 유로로 접종할 때 가격인 시장가 1만6000~1만7000원의 50~60% 수준이다.

그는 “백신 가격은 너무 깎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며 “백신은 관리가 까다로운 생물학적 제제로 국가 안보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 백신 개발 회사에 적정한 연구비를 지원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노피, GSK, 아스트라제네카 등의 독감 백신 국가예방접종사업 가격은 시장가의 70∼8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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