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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용구' 이어 '오피스텔 친구 살인'…경찰 부실수사 언제까지

'마포구 연남동 오피스텔 친구 살인사건' 정황 드러나
故박모씨, 사망 전 피의자들 상해죄 고소·2번 가출신고
피의자 둘, 앙심 품고 감금·경찰에 허위진술 강요해
피해자 말만 믿은 경찰, 결국 검찰 '불송치' 후 사망
  • 등록 2021-06-20 오후 5:11:37

    수정 2021-06-20 오후 9:52:59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를 감금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20대 남성 2명의 범행을 경찰이 범죄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정황이 드러났다. 작년 말부터 ‘정인이 사건’과 ‘이용구 폭행 무마 사건’ 등으로 뭇매를 맞았던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 A씨를 감금해 살인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공포의 동거’…장기간 폭행·가혹행위 이어져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는 “친구가 죽었다”는 신고를 받고 연남동 한 오피스텔에 출동했다. 고(故) 박모(20·남)씨가 나체 상태로 숨져 있었다. 박씨의 몸에는 폭행과 영양실조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신고자 안모(20·남)씨와 친구 김모(20·남)씨를 중감금치사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안·김씨는 15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거쳐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연남동 오피스텔 친구 살인사건’의 전말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파고 들어 가면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안·김씨에겐 상해죄 고소가 작년 11월 접수돼 수사가 진행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피해자 박씨 앞으로도 가출신고가 접수되는 등 경찰은 사건을 들여다 볼 수차례 기회를 번번이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중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다닌 안씨와 김씨는 작년 6월부터 서울 강남에서 동거를 시작해 그해 10월 영등포구, 11월 마포구 서교동을 거쳐 연남동의 한 오피스텔에 봇짐을 풀었다. 김씨와 고등학교 동창인 박씨는 작년 7월부터 이들의 주거지를 드나들었다. 이맘 때쯤부터 폭행과 가혹행위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10월 17일 아들이 집을 나갔다며 경찰에 첫 번째 가출 신고를 했다.

둘의 폭행 정황이 처음 경찰에 포착된 것은 작년 11월 초쯤이었다. 당시 박씨는 편의점에서 음료수 1병을 훔치다 걸려 양재파출소에 임의동행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박씨 몸에서 폭행 흔적을 발견했다. 양재파출소는 대구에 있는 박씨의 아버지에게 인계했고, 박씨는 아버지와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강요된’ 피해자 말만 믿고 불송치…경찰, ‘부실수사’ 도마

서울에서 내려온 박씨는 전치 6주의 골절상을 받고 병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1월 8일 아버지와 함께 김·안씨를 대구 달성경찰서에 상해 혐의로 고소하고, 그달 22일 피해자 조사를 받으며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달성경찰서는 11월 26일 사건을 피의자들의 주거지가 있는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넘겼다.

영등포서는 올해 1월 24일 피의자 신문 조서 작성을 시작으로 본격 수사에 나섰다. 고소 사실을 알게 된 둘은 3월 31일 대구에서 박씨를 서울로 데려와 감금하고 굶기면서 고소 취하를 강요했다. 4월 17일 영등포서는 피해자 대질조사를 위해 박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당시 그는 감시를 받고 있었다. 둘의 협박으로 박씨는 경찰에 “지방에 있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

상해 사건은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처벌 불가)가 아니지만, 영등포서는 보강 수사 없이 5월 27일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공소 유지를 하려면 폭행 일시와 장소를 특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 대질조사가 필요한 상황인데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 종결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 A씨를 감금해 살인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씨의 비극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던 기회는 또 있었다. 박씨의 아버지는 피의자 일당이 앙심을 품고 박씨를 서울로 데려간 후인 지난 4월 30일 대구 달성서에 두 번째 가출신고를 했다. 가출신고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공유되지 않지만, 신고를 접수한 달성서는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아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경찰은 이미 감금과 폭행을 당하고 있던 박씨의 “두 사람과 함께 있지 않다”, “독립하기 위해 가출했다”는 말을 믿었다.

경찰은 박씨가 사망하기 불과 며칠 전인 이달 4일에도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당시 박씨가 말을 심하게 더듬고 통화 음질이 좋지 않자, 문자메시지로 박씨의 상황을 전달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정인이’·‘이용구’에 이어 또 터진 안일한 대응

결국 경찰이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는 사이 박씨가 사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경찰이 ‘정인이 사건’, ‘이용구 택시기사 폭행 무마 사건’ 부실수사로 대국민 사과를 한 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경찰은 작년 10월, 16개월 영아 고(故) 정인(입양 전 이름)양이 양부모에게 학대당했다는 신고를 세 차례나 접수하고도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작년 11월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또한 눈 감아주고 내사 종결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경찰이 스스로 신뢰받지 못할 행동을 계속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사건의 피상적인 부분만 형식적으로 판단하고 이면에 벌어지는 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며 “일련의 사건 관련, 의심을 해보고 적극적으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영등포서의 상해 고소 사건 수사·불송치 과정과 달성서의 가출 신고 처리 과정이 적법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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