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창업주 "美 제재는 동기부여"…中 반도체 자립 속도

中, 美 제재에도 반도체 부품·장비 국산화 속도
설마했던 中 반도체 굴기 현실로…韓 위협 촉각
  • 등록 2023-09-20 오후 6:11:21

    수정 2023-09-20 오후 10:06:00

[이데일리 김정남 박종화 기자] “미국의 제재는 압력이자 동기부여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의 런정페이 창업자 겸 회장은 국제 대학생 프로그래밍 대회(ICPC)에 참가한 대학생, 교수 등 코치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에는 화웨이의 기본 플랫폼을 미국에 구축했으나, 제재 이후에는 이를 바꿔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전했다. “(2019년 미국의 제재 이후) 지난 4년간 화웨이 직원 20만명의 노력 끝에 자체 플랫폼을 구축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언급은 대회 기간인 지난달 21일과 26일 나왔다. 그러나 공개는 지난 19일 ICPC 재단 베이징본부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졌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에도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를 내장한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지난달 29일 출시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화웨이가 첨단 반도체와 5G 기술의 자립을 이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발언 공개 시기를 늦췄다는 해석이 나온다.

런정페이는 “화웨이는 기초 과학연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매년 30억~50억달러(약 3조9900억~6조6500억원)를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애플의 팬이냐’는 질문을 받고서는 “배우고 비교할 기회를 준 교사가 있어 기쁘다”며 “애플 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화웨이 창업주의 자신감에서 보듯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화웨이 스마트폰 충격 이후 각종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 자립을 이뤄가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처럼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런정페이 중국 화웨이 회장. (사진=AFP)


中, 반도체 부품 국산화 속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일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YMTC)가 반도체에 들어가는 미국산 램리서치 등의 부품을 중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중국 회사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 지원을 받고 지난 2016년 설립된 YMTC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희망으로 불린다.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첨단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부품·장비를 중국 회사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YMTC에 반도체 장비를 공급하던 램리서치 등은 중국에 대한 제품 수출은 물론 유지·보수 서비스까지 중단했다.

중국이 당장 시급한 것은 부품이다. 미국산 장비 수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부품을 제때 보수하거나 교체하지 않으면 있는 장비도 제대로 못 쓰는 탓이다. 한 소식통은 “부품 국산화에 실패한다면 유지·보수가 어려워지고 교체 부품이 부족해지면서 수율이 점차 감소해 YMTC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SCMP는 국산화가 시급한 부품으로 정전척(ESC·정전기를 이용해 웨이퍼를 고정하는 부품)을 예로 들었다.

YMTC가 부품·장비 국산화에 나서는 것은 미국이 일본, 네덜란드 등과 함께 중국 반도체를 겨냥한 포위망을 강화하면서 ‘홀로서기’에 더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올해 초 중국의 국영 반도체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 등이 YMTC에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를 신규 투자한 것도 기술 자립을 돕기 위해서다. YMTC는 이 자금을 부품·장비를 국산화하고 미국 기업을 대신한 새 공급망을 구축하는데 쏟아붓고 있다. 화웨이가 미국 규제 기준(14㎚ 이하)보다 앞선 7㎚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공개하며 파란을 일으킨 것은 이같은 노력의 성과로 읽힌다.

中 통제망 다시 조이려는 美

장비·부품뿐만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올해부터 감시카메라 제조업체로 새로운 반도체를 출하하고 있다”며 “최소 일부 고객은 중국 업체들”이라고 전했다. 하이실리콘은 주로 화웨이에 장비용 칩을 공급한다. 다만 다화 테크놀로지, 하이비전 등 중국 내 감시카메라 업체들도 외부 고객으로 두고 있다. 하이실리콘은 미국 수출 통제 이전 감시카메라 시장에서 전 세계 점유율이 60%에 달할 정도로 지배적인 공급업체였다.

이 소식통은 “감시카메라용 칩은 스마트폰 프로세서에 비해 제조가 용이하다”며 “하이실리콘의 복귀가 시장을 뒤흔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핵심은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라며 “중국이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통제망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하원 청문회에서 “중국이 7㎚ 칩을 대규모로 제조할 수 있다는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확보 경위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업계는 화웨이가 어떻게 첨단 반도체를 확보했는 지에 대해 여전히 뚜렷한 경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러몬도 장관은 “중국이 미국을 해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지식재산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미중 반도체 신경전이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 역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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