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28조 빅딜 이끈 '소심남'이 M&A 시장에 미치는 영향

피그마, 어도비에 200억 달러에 매각
주춤한 시장 분위기에도 역대급 빅딜
"경쟁력 있는 매물 투자 아깝지 않다"
국내서도 제2의 피그마 나올지 관심
"시장 분위기 탓은 핑계다" 메시지도
  • 등록 2022-09-20 오후 6:21:53

    수정 2022-09-20 오후 6:57:05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투자하기 어려운, 아니 무서운 요즘이라고들 한다. 모두가 엄혹한 시절이라며 몸을 사리는 가운데, 미국에서 기록적인 대형 M&A(인수합병)가 체결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신이 운영하던 그래픽 편집 플랫폼 회사 ‘피그마’를 무려 200억 달러(28조원)에 매각한 딜런 필드(Dylan Field)가 그 주인공이다.

‘포토샵’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 소프트웨어 업체 어도비는 최근 피그마를 20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포브스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어도비가 감행한 단일 M&A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 2018년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케토(Marketo)를 인수할 때 사용한 47억5000만 달러가 종전 최대 규모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몇 배를 훌쩍 뛰어넘는 메머드급 M&A가 이뤄진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소프트웨어 업체 어도비는 최근 피그마를 20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피그마를 창업한 딜런 필드(왼쪽)와 에반 월러스 (사진=브라운대)
어도비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베팅하면서 피그마 창업자인 딜런 필드(Dylan Field)와 에반 왈라스(Evan Wallace)는 일약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현재 미국 자본시장에서 추정하는 이들 두 사람의 보유 지분은 약 10% 안팎으로 알려졌다. 산술적으로 이번 M&A를 통해 거둬들이는 수익만 3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자본시장 안팎에서는 피그마를 창업한 딜런 필드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애플 최고경영자(CEO)였던 고(故) 스티브 잡스처럼 뛰어난 언변을 가지지도, 메타 창업주인 마크 주커버그처럼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력의 소유자도 아니다.

딜런 필드는 고등학교 때부터 말수가 그리 많지 않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수줍음이 많았던 탓에 벤처캐피털 등 투자자들이 주최하는 행사에서 종종 혼자 술을 마시는 등 내성적인 성격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한 성격과 달리 창업 의지는 남달랐다. 그는 브라운 대학 3학년 때 억만장자 금융가가 운영하는 펠로우십(장학금)에 지원해 10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대학 중퇴 이후 본격적인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난폭 운전자 단속 드론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가 실패를 맛본 그는 지난 2012년 대학 동문인 에반 월러스와 피그마를 설립했다. 회사 설립 후 제품이 나오는 데까지는 4년이 걸렸다.

피그마는 사람들이 함께 프로젝트를 디자인할 수 있는 그래픽 편집 플랫폼으로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19로 각자의 위치에서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업무 툴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사용자가 크게 늘었다.

특히 어도비 제품이 PC나 앱에서만 구동되는 것과 달리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범용성이 젊은 사용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다. 편집자당 12~45달러만 내면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도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피그마의 쾌속 성장을 견제하던 어도비는 결국 30조원 가까운 자금을 들여 피그마를 인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너무 비싸게 산 것 아니냐’는 우려에 어도비 주가는 피그마 인수가 발표된 15일 17% 가까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도비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급증하는 실적과 시장점유율을 봤을 때 피그마 인수에 확신을 갖는 모습이다.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최고경영자(CEO)는 피그마 인수 직후 “어도비와 피그마의 조합은 혁신적이며 우리의 비전 (달성)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피그마 M&A가 자본시장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시장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역대급 빅딜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어도비 의사 결정권자들이 내린 결론이 ‘피그마에게 이 정도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수 가격이라는 것은 누가 정해주지도, 알려주지도 않는다.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느냐, 정말로 인수를 희망하는 진성 원매자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번 피그마 인수가 다자구도 끝에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닌 사실상 단독 협상 형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해당 산업군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면 몸값은 천정부지로 뛸 수 있다는 점이다. 주춤한 분위기를 비웃듯 천문학적인 규모의 M&A가 체결됐다는 점은 시장 분위기를 탓하는 게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피그마 M&A 사례를 국내에도 대입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M&A 시장에는 몸값 1조원이 넘는 대형 매물들이 10개 가까이 나와 있다. 연내 ‘제2의 피그마’가 국내에서도 나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피그마 이후 M&A 흥행 실패를 시장 분위기 탓으로 돌릴 핑계 거리는 사실상 사라졌다. 시장 분위기가 꺾여 M&A에 실패한 게 아니라 매물의 매력이 없다는 점을 인정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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