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사상태 지방대]③“옆 대학 문닫길 바랄 뿐”…‘버티기’ 들어간 대학들

‘벚꽃 피는 순서로 폐교’ 본격화…올해 미충원 최소 3만
추가모집 결과 지방대 10곳 중 9곳 이상이 미달로 개강
지방대, 아이패드에 학비 면제 내 걸어도 미달 사태 속출
“충원·재정난 겪는 대학 출구전략 담은 사학법 개정” 촉구
  • 등록 2021-03-04 오후 3:37:25

    수정 2021-03-04 오후 9:19:24

[이데일리 신하영 오희나 기자] “지방대학들이 버티기에 들어가고 있다. 옆 대학이 먼저 문 닫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학령인구 감소 여파로 지방에선 미달 대학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2019년에 열린 대입 정시 박람회.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에는 대입 박람회마저 열리지 못했다.(사진=뉴시스)
학령인구 감소에는 백약이 무효했다. 학생 모집에 비상이 걸린 대학들이 아이패드, 첫 학기 등록금 면제 등 입학생들을 위한 갖가지 선물을 내걸었지만 미달 대학이 속출한 것이다.

3일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올해 지방대학의 95% 이상은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신학기를 개강했다. 지난달 27일 기준 추가모집 현황을 공개한 비수도권 72개교의 경쟁률은 0.14대 1에 그쳤다. 1만985명을 모집하려고 했지만 지원자는 1553명에 불과했다. 추가지원 현황을 공개하지 않은 대학까지 합하면 올해 4년제 대학의 미충원 규모는 2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전체 대입정원 49만명의 6%가 넘는 규모다.

지방서 100명 이상 미달 대학 속출

학령인구 감소에 비상이 걸린 대학들은 올해 대입에서 갖가지 선물을 제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부산의 신라대는 추가모집 입학생에게 1년간 학비를 면제한다고 발표했지만 정원 440명을 채우지 못했다. 전북의 우석대도 장학금 50만원 지급하고 원하는 학과를 선택할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지원자가 정원 대비 273명 부족했다.

대전의 배재대는 입학생들에게 첫 학기 등록금 면제와 아이패드 지급을 내걸었지만 238명이 미달했다. 광주지역도 전남대(140명)· 조선대(128명)·호남대(169명) 등의 미달 인원이 100명을 넘었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학생들은 상위권 대학에 가고 싶어 하지 장학금이나 아이폰을 준다고 하향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소재 대학은 그나마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지만 지방은 권역 내에서 대학 간 출혈경쟁을 벌여야 한다. 광주지역 사립대 관계자는 “A대학에서 스마트기기와 지원금을 준다고 하자 B대학은 장학금을 80만원으로 올렸고, C대학은 100만원까지 올렸다”고 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20 교육통계에 따르면 올해 고3학생보다 대학 입학정원이 많은 지역은 충남·대전·강원·충북·부산·경북 등 6개 시도다. 대전시만 해도 지역 내 대입정원은 1만9157명인데 비해 올해 고3 학생은 1만4311명으로 4846명이 부족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버티기에 돌입한 대학들은 인근 대학이 먼저 문 닫기만을 바라고 있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버티기에 들어간 대학들은 옆 대학이 먼저 문 닫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전북지역의 대학 관계자도 “지방대는 해당 지역 학생들이 지원해야 운영할 수 있다”며 “마지막까지 서로 뺏고 뺏기는 싸움을 벌이면서 피가 마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미 지방대 입시는 학생이 지원하면 합격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충남지역 한 대학 총장은 “이미 지방대는 학생들이 조건을 보고 고르는 곳으로 전락했다”며 “지방에선 등록금 인상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미충원 재정난에 캠퍼스 매각 움직임도

신입생 미충원은 곧바로 재정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지난해 기준 전국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약 748만원이다. 정원 100명만 못 채워도 연간 7억4800만원의 등록금 수입이 감소한다. 우리나라 사립대 등록금 의존율은 54%로 절반을 넘어선다. 등록금 수입 감소가 지속되면 재정난은 불가피하다.

버티기에 들어간 지방대 중 자구책 마련에 착수한 곳도 있다. 올해 추가모집에서 160명 이상이 미달한 경북 경주시의 경주대는 인근 서라벌대와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양 대학을 합친 뒤 한 쪽 대학의 캠퍼스를 매각하는 방안으로 재정난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이 대학 송영달 기획처장은 “경주대와 서라벌대는 동일한 학교법인(원석학원)이 경영하는 대학”이라며 “양 대학의 통합을 통해 한 쪽의 캠퍼스를 매각하는 등 1500억원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대학 미충원 사태가 본격화할 것으로 본다. 교육부가 2019년에 발표한 ‘학령인구 변화에 따른 대학 입학자원 추이’에 따르면 올해 치러지는 2022학년 대입에선 8만518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이어 미충원 규모는 △2023학년도 9만96305명 △2024학년도 12만3748명으로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지방대 고사가 지방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법정 교원확보율 기준을 높여 정원 외 선발 등 무분별한 학생 선발을 규제하는 한편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며 “특히 지방에서 대학들이 폐교하면 인구감소 등 지방소멸로 이어지기에 이제는 지자체도 나서 대학에 대한 선택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모집·재정상황이 한계에 달한 대학에 대해 퇴로를 열어주는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기홍 국회 교육위원장도 “대학에 대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며 “한계 사학은 스스로 문을 닫게 하고 경쟁력 있는 지방대는 지원하는 방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대학 청산 시 잔여재산을 국가나 지자체로 귀속토록 하고 있는데 충원난·재정난을 겪는 사학 설립자가 잔여재산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출구전략을 열어주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래픽=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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