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전력공사(015760) 등 에너지 공기업이 오롯이 떠안고 있던 우크라이나 전쟁발 국제 에너지값 급등 부담을 대기업을 중심으로 분담키로 한 모양새다. 전기·가스요금이 꽤 큰 폭 오르며 반도체, 철강, 정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기업을 중심으로 요금 부담이 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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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30일 누적된 발전 연료비 인상요인을 반영해 10월부터 전기요금을 1킬로와트시(㎾h)당 2.5원씩 일괄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미 발표했던 올해 기준연료비 잔여 인상분 4.9원/㎾h을 더하면 총 7.4원/㎾h가 올라가는 것이다.
전기요금은 용도·시간대별로 요금에 큰 편차가 있지만 최근 한전의 평균 판매가가 110원/㎾h 전후라는 걸 고려하면 약 7% 오르는 셈이다. 전국 4인가구의 월 전력소비량이 평균 307㎾h란 걸 고려하면 월 요금은 3만4000원에서 3만6000원대로 월 2270원씩 늘어난다.
일반 가정의 올겨울 에너지 요금 부담은 이보다 훨씬 더 클 전망이다. 주택·일반용 도시가스 요금도 큰 폭 올랐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같은 날 민수용(주택·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을 메가줄(MJ)당 2.7원 올랐다. 주택용은 16.99원에서 19.69원으로, 일반용(영업용1)은 16.72원에서 19.32원이 됐다. 이미 인상이 예정돼 있던 정산단가 0.4원 인상에 더해 올 들어 급등한 국제 천연가스 시세를 반영해 기준원료비를 2.3원 더 올린 것이다. 주택용 기준 인상률은 15.9%이다.
전기·가스요금 동반 인상으로 10월 이후 서울 지역 혹은 전국 4인 가구의 월 에너지 요금이 7670원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 지역 4인가구의 전기·가스요금은 월 6만9000원에서 7만7000원 수준까지 오를 전망이다.
산업용, 특히 고압의 전력을 쓰는 대형 사업장의 에너지 요금 부담은 일반 가정보다 훨씬 커진다. 한전은 계약전력 300킬로와트(㎾) 이상의 산업·일반용(을) 대용량 고객에 대해선 기준연료비 잔여 인상분 4.9/㎾h원과 연료비 인상분 반영 전체 인상분 2.5원 외에도 4.5원(고압A)이나 9.2원(고압 B~C)를 더 올리기로 했다. 도합 11.9원~16.6원/㎾h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제철 등 국내에서 전력소비량이 가장 많은 기업군은 매년 1조원 정도의 전기요금을 내고 있는데 그 비용이 매년 1000억~2000억원 늘어날 전망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천차만별인 만큼 정확한 인상률을 산출하는 게 쉽진 않다. 다만, 한전이 올 1분기 전력 소비 상위 50개 기업에 공급한 전력 판매단가가 100원/㎾h 남짓이었던 걸 고려하면 이번 인상으로 약 12~17%의 추가 전기요금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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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원료인 액화 천연가스(LNG) 국내 도입을 맡은 공기업 한국가스공사(036460)의 미수금(정부의 공공요금 억제로 받지 못한 돈)도 올 상반기 말 5조1000억원에 이르렀다. 연말이면 사상 최대 규모인 10조원에 육박하리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최근 6%를 넘나들고 있는 물가 상승 부담에도 전기·가스요금을 예정된 것 이상으로 올리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 26일 10대그룹 사장단을 만나 현 에너지 위기의 절박성과 대용량 사업자 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요금 인상에 앞서 사전 양해를 구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 장관은 30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현재 전 세계는 1970년대 오일 쇼크에 준하는 심각한 에너지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도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와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상황 악화 등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며 “모든 국민이 현 위기의 장기화에 대비해 에너지 저소비-고효율 구조로의 전환에 참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