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신청하셨죠?"…피싱 악몽의 시작, 남일 아니다[기자수첩]

진화하는 피싱 범죄, `악성앱` 통한 고액 피해 급증
IT 접근성 낮은 노인들 피해 많아져
피해 막을 법안 정비 서둘려야
  • 등록 2024-11-12 오후 3:07:23

    수정 2024-11-12 오후 7:14:58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000님, 카드 신청 하셨죠?” 내 이름을 아는 수화기 너머의 인물. 하지만 카드 신청을 한 적은 없기에 ‘뭐지?’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도착한 ‘[국제발신]34만9000원이 결제됐습니다’ 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면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내게 전화를 한 인물이 “사기 당하신거 같은데요. 제 말대로 하세요”라고 대처 방법을 설명하고 그의 말을 따르기 시작하면 나는 ‘낚였다’.

피싱범죄 조직의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피싱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피해가 줄어드는가 싶었지만 진화된 시나리오로 접근하는 조직의 수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노리는 타깃은 은퇴자들이 알뜰살뜰 모아둔 노후자금이다.

최근 성행하는 피싱범죄의 경향을 보면 앞에서 설명한 ‘카드 신청’은 대표적 시나리오고 다른 방식의 수법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정체불명의 앱을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이 과정에서 앱을 설치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가늠키 어려운 노인들이 상당수였다.

이 악성 앱을 깔았다면 피싱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며칠간 계속해서 연락하고 피싱이 의심돼 경찰에 연락을 한다해도 범죄자에게 연결된다. 심지어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족의 전화번호를 조작해 범죄에 활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조작된 ‘연극’에 수일 내에 많게는 수억원의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대출을 받아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기도 한다.

날로 진화하는 피싱범죄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만 제도적 장치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21대 국회 당시 피싱 등 사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심 계좌 긴급 지급정지를 골자로 한 ‘사기방지기본법’을 추진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기범죄의 경우 지급정지에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 범죄자에게 돈이 흘러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피싱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정치가 시급하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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