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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근로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이 2018년 7월부터 시행되었고, 작년 7월부터는 50인 미만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되었다. 근로시간 단축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근로자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창출이다. 현시점에서 과연 이 두 가지 목표들을 달성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연간 근로시간 통계를 보면 근로시간 단축 이전인 2017년 우리나라 근로시간은 2018시간이었고, 2021년은 1915시간으로 100시간 가까이 줄었다. 이는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인한 효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 통계를 보면 이미 근로시간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였다. 2011년은 2136시간으로 2017년에 이미 120시간 가까이 줄었었고, 이후에 감소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이는 근로시간 단축에 더해 코로나19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근로자들의 만족도는 어떨까?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통계도 있지만 유의미한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심지어는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이 악화했다는 조사도 있는데 이는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근로시간이 줄되 임금이 그대로 유지된 경우라면 만족도가 높을 것이고 이는 어느 정도 규모와 여력이 있는 회사가 임금을 보전한 경우 더 그렇다. 반대로 중소영세기업의 근로자들은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임금이 줄어들어 투잡을 해야만 하는 경우까지 내몰렸다.
올해 7월 실시한 중소기업중앙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소조선업체 근로자의 73.3%가 주 52시간제 이후 임금이 감소했고, 55%는 워라밸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연장근로 수당이 줄면서 야간 대리운전이나 배달 등 투잡하는 가장들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근로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있다. 취미나 여가생활을 보내는 ‘저녁 있는 삶’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저녁은 있지만 돈이 없는 삶’을 사는 가장들의 한숨은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대·중소기업간 임금과 워라밸 격차를 더 벌려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축구에서 완벽한 전술이라는 게 없다면 어떻게 경기에서 이길 수 있을까? 답은 전술의 유연성이다. 플랜A가 통하지 않는다면 상대에게 맞춰 플랜B를 준비하고 경기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임금이 줄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면 그에 맞춰서 정책을 유연하게 짤 필요가 있다.
최근 발표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근로시간 개편에 관한 권고문에도 포함되었듯이 근로시간의 유연화는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 다양한 업무나 일하는 방식에 맞게 주 평균 40시간은 맞추되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근로시간을 늘리고, 일이 줄어든 시기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활용도를 높이고,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같이 고소득ㆍ전문직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규제에서 자유롭게 할 필요도 있다. 경제상황은 시시각각 급변하는데 획일적인 제도만을 강요해서는 그 결과가 뻔하다. 지금은 노사가 기업상황과 근로자 여건에 맞게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유연하게 개선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