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1인치의 장벽’(자막)은 여전히 높다. 그 상황에서도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고 한국어가 대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영화가 다시 한번 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됐다.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애환을 그린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다.
‘미나리’는 3일(미국시간) 발표된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최종 후보에서 외국어영화상에 이름을 올렸다. ‘미나리’는 덴마크의 ‘어나더 라운드’, 프랑스-과테말라 합작의 ‘라 요로나’, 이탈리아의 ‘자기 앞의 생’(더 라이프 어헤드), 미국-프랑스 합작의 ‘투 오브 어스’와 외국어영화상을 놓고 경합을 펼친다.
세계 최대 영화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서 아카데미와 함께 양대 영화 시상식으로 꼽히는 골든글로브에서 노미네이트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쾌거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미나리’의 노미네이트에 대해서는 현지 언론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연기상 등 다른 부문의 후보에 지명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그 만큼 ‘미나리’의 작품성과 완성도는 미국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미나리’는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로 꼽히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주목하고 미국 내 많은 비평가협회상에서 수상을 안겼다. 미국 유력지인 타임은 ‘11개의 의아한 골든글로브 후보-대신 무엇을 지명해야 했나’라는 기사에서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의 독특한 규정-그것도 외신 기자들이 투표하는-때문에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놀랍지 않다”고 비꼬는 한편 정이삭 감독의 각본, 윤여정의 연기를 치켜세우며 외국어영화상 외 다른 모든 부문에서 제외된 것이 의아하다고 짚었다.
골든글로브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영화에서 50% 이상 사용되면 외국어영화로 분류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로 인해 ‘기생충’이 지난해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고, ‘미나리’가 올해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될 것으로 알려져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HFPA가 다국적 기자들의 모임인데 지난해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아카데미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며 “이미 그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는데도 후보에 올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아카데미와 독자적인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카데미는 외국어영화상의 이름도 국제장편상으로 바꾸고 작품상 규정에 다양성 조건을 신설하는 등 쇄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골든글로브와 상이한 결과를 냈는데 골든글로브를 가리켜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미나리’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남부 아칸소로 이주한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제이콥(스티븐 연 분) 가족이 농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좌절과, 그로 인한 불화 등을 그리며 이민자가 처한 현실을 짚는다. ‘워킹데드’와 ‘버닝’으로 알려진 스티브 연을 비롯해 한예리 윤여정 등이 출연한다. 국내에서는 내달 3일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오는 28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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